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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영화 <남한산성>의 관람 후기이며, 사용 된 이미지는 스틸컷입니다.

 

 

 

한민족은 굉장히 훌륭한 민족이다. 반만년 동안 민족의 정통성을 유지하는 몇 안되는 민족 중 하나일 것이다.

뛰어난 과학 기술, 음식 문화 등 찬란한 문화 유산도 많지만 그만큼 답답한 민족성을 지니기도 했다. 수 많은 침략을 당하면서도 정신 못 차리는 당파 싸움, 사대부, 종묘사직 등은 정말 생각할수록 가관이었다. 

 

 

영화 <남한산성>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청나라가 조선에 대한 제2차 침입으로 일어난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오랑캐라 무시하지만 청나라군에 아무런 대항조차 못하고 몽진을 떠난 인조. 왕자들은 강화도로 피신했지만 인조는 겨울철의 한파로 인해 남한산성에 고립되고 만다. 물론 조선군이 가만히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각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관군들이 속속 임금을 구하고자 올라왔지만 대부분 대패하고 만다.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은 임금의 몽진을 돕기 위해 술과 고기를 싸들고 직접 청군 진영으로 들어가 침략 이유와 조건, 그리고 그들의 군비를 살펴보고 돌아온다. 최명길의 보고에 대신들은 분노하고, 그 화살은 최명길에게 쏟아졌다.

 

 

| 국가 위기 상황에서 죽어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 뿐.

나라의 존망이 걸렸음에도 사대부, 명황제를 떠받드는 동안 백성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 성을 지켜야 하고 잡일을 도맡아해야 하는 백성들. 그들의 눈에 그저 입으로만 떠드는 양반들이 곱게 보일리는 없다. ( 이런 걸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고위직들의 무능은 여전한 듯 )

 

 

수어사 이시백 장군(박휘순).

여러 전공을 올린 장수답게 지형지물과 주변 환경을 이용한 병법에 통달했지만 제찰사이자 영의정인 김류에 의해 아무런 발언도 할 수 없는 비운의 장수였다. 오히려 김류의 억지로 인해 부하는 참수를 당하고 자신은 엄동설한에 곤장형을 받아야만 했다.

 

 

| 주화파 vs 척화파의 대립, 오늘날 대한민국과 비슷하다.

이조판서 최명길은 대표적인 주화파로 청의 조건을 받아들이자는 의견을 임금에게 고한다. "살아남아야 종묘사직도 가능한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일단 살아남고 백성들이 있어야 힘을 모아 훗날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척화파 김상헌의 주장도 틀리진 않았다. 당시의 시대상을 보면 그의 "승명청배"정신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임금이 오랑캐에게 굴복하느니 구원군과 합세하여 일전을 벌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처럼 두 충신은 각자의 사상에 맞게 임금에게 호소한다.

 

 

| 무능한 신료들이 나라를 망치다

임금과 나라를 위해 목숨조차 내놓지 못하면서 주둥이로만 충직한 신료들이 대거 등장한다. 특히 영의정이자 제찰사 김류는 무능하면서 권위만 내세우는 정승의 표본을 보여준다.

병법이나 전술에 대해서는 모르면서도 인조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인조의 명을 받아 출정을 했지만 이시백 장군이 이를 제지한다. 

하지만 제찰사라는 권위를 내세워 300명의 군사를 사지로 내몰게 되고 추후 인조에게 이를 이시백의 탓이라 간언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백성, 일반 병사들은 그야말로 충직한 신하들이었다.

그들은 오로지 나라와 임금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끝까지 명령을 받들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허무한 죽음 뿐.

물론 만약 구원군이 제때에 도착, 봉화만 올렸어도 삼전도의 굴욕같은 일은 없었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고 제대로 사태 파악을 못하는 사람들이 나라를 어렵고 힘들게 만들었다.

 

무능한 군주로 1~2위를 다투는 인조.

무능한 군주 밑에 유능한 신하가 나올 수는 없는 법. 만약 인조가 조금만 더 현명했더라면 병자호란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영화 <남한산성>은 정말 보는 내내 답답함과 분노를 참기 어려웠던 영화였다.

하지만 역사의 사실을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겨 조금의 픽션 가미도 없이 140분의 러닝타임 동안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의 결말처럼 김상헌은 자결하지 않았다.

최명길과 김상헌은 삼전도의 항복 후, 청나라 심양에서 다시 만나 서로의 뜻은 달랐지만 모두 나라를 위한 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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